

서순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신임 공동대표가 27일 한스경제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호형 기자
| 서울=한스경제 주진 기자 | “높은 집값과 생활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플랫폼의 과도한 수수료, AI에 따른 일자리 불안, 개인정보 침해 등 시민이 겪는 불공정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 경제정의의 범위를 토지‧주택과 재벌 문제에서 데이터‧플랫폼‧AI까지 넓혀야 하는 이유입니다.”
서순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신임 공동대표는 지난 27일 한스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토지‧주택‧재벌‧플랫폼 분야에서 독점과 불로소득을 억제하고 민생경제의 공정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AI 대전환이 일자리 양극화와 데이터 독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알고리즘의 투명성, 데이터 공공성, 노동자의 전환 지원과 사회안전망을 의제화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보유세 높이고 양도세는 낮춰야...무주택 서민의 주거비 낮추는 정책으로 구체화”
6월항쟁을 계기로 지난 1989년 ‘소득의 공정한 분배에 기초한 경제정의를 실현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창립한 경실련이 올해로 37주년을 맞았다. 시민단체 ‘맏형’격인 경실련은 출범 초기 토지공개념 입법 운동을 벌이며 부동산 문제를 이슈화했고,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부동산 투기 근절, 임대차 제도 개선, 공직자 재산공개, 재벌 개혁, 부패방지법 제정 등 굵직한 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도시계획·부동산 전문가인 그는 경실련 출범 초기부터 서민주거안정본부장‧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 등 이른바 ‘임대차 3법’ 마련에 앞장선 바 있다. 2017년 한국도시행정학회 회장, 2019년부터 4년간 제9대 서울시립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서 대표는 한국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근본 원인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세제 개편 방향으로는 "보유세는 강화하고 양도소득세는 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유 부담을 높이는 대신 거래를 활성화해 시장 순환을 유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보유세를 정상화할 때는 부담 능력도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테면 오랫동안 한 집에 살면서 현금소득이 부족한 고령자에게는 매각이나 상속 시점까지 세금 납부를 미루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이다.
서 대표는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방향은 긍정적이지만, 공급 물량이 아니라 무주택 서민의 주거비를 낮추는 정책으로 구체화돼야 한다”며 “공급량, 분양가격, 소유방식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서 대표는 경실련이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택 공급정책으로 제시한 ‘진짜 공공임대주택’과 토지임대부 주택을 3시신도시와 공공택지‧국공유지에 적극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짜 공공임대주택’은 세입자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하고, 보증금‧월세‧관리비를 합친 주거비가 소득에 비해 감당할 만 하며, 접근하기 어려운 외곽에만 지어서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공공이 땅을 소유하고 시민이 그 위의 건물만 분양받는 방식인 토지임대부 주택은 집값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땅값을 빼기 때문에 분양가격을 낮출 수 있고, 세금으로 조성한 공공택지가 개인의 시세 차익으로 바뀌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 대표는 또 “대출과 세금은 실거주자와 투기 수요를 구분해 설계하고, LH의 건설원가‧분양원가와 개발이익을 공개해야 한다”고 직격했다. 공공부터 원가를 투명하게 밝혀야 민간 분양가의 거품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은 열악한 생활환경 정비와 도심 내 주택 공급 차원에서 필요하지만, 실제 순공급 효과와 기존 주민의 재정착을 기준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정부와 서울시는 사업마다 철거주택, 순증가 물량, 분양가와 임대료를 시민에게 알려야 하고, 세입자와 영세상인의 재정착 대책을 사업 승인 전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용적률을 높이거나 용도지역을 바꿔 사업성이 커졌다면 그 이익의 일부는 공공이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 대표는 “개인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규제 완화로 새롭게 생긴 가치의 일부를 시민에게 돌리는 것”이라며 “확보된 재원과 주택은 공공임대, 기반시설과 세입자 재정착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출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가계부채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선 상태이고, 대출을 풀면 단기적으로는 수요가 늘어나 집값을 더 끌어올릴 뿐“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 이재명정부 반도체산업 통한 경제성장 큰 성과...AI시대 성장과실 분배도 중요
이재명정부가 ‘AI 3대강국 도약’을 기치로 내걸고 초대형 국가전략산업인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 속도전에 나선 데 대해 “AI시대 국가경쟁력 제고와 지역균형발전을 실현할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형 시설 하나 짓는다고 균형발전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메가프로젝트의 성패는 건물과 시설의 규모가 아니라 지역에 일자리‧인재‧소득이 얼마나 오래 남느냐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업이 수도권의 기능과 인구를 실제로 분산하고 지역 청년에게 지속적인 일자리를 만드는지 검증해야 합니다. 또 지역 대학‧연구기관‧중소기업이 사업의 주변부가 아니라 핵심 주체로 참여해야 지역에서 인재를 교육하고, 연구 성과가 지역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며, 벌어들인 소득이 지역 상권에서 순환해야 진정한 생태계가 만들어집니다.”
서 대표는 또 “사업비‧재원‧일정‧참여기업 선정기준‧환경비용‧완공 후 운영비를 처음부터 공개하고, 예상보다 수요가 적을 때 누가 손실을 부담하는지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AI 대전환기에 한국은 유례없는 반도체산업 호황을 누리고 있어요. 미국 IT산업 심장부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대통령과 글로벌 빅테크기업 CEO들의 ‘병맥 파티’ 사진은 한국 경제사에서도 길이 남을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죠. 반도체산업을 통한 경제성장은 이재명정부의 큰 성과가 될 것으로 봅니다.”
다만 경제회복이 반도체‧IT와 고소득층에 쏠리는 'K자 성장‘ 우려가 큰 상황에서 성장 과실을 골고루 나누는 문제는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서 대표는 “성장과 분배는 서로 대립하는 목표가 아니다. 안정된 소득과 공정한 거래 조건이 있어야 소비가 늘고 내수와 지역경제도 살아난다”며 “성장의 속도뿐 아니라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이 국정 2년차 이재명정부의 핵심과제”라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배분과 관련해선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지키면서, 그 성과가 노동자‧협력업체‧지역사회에도 공정하게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무엇보다 ‘AI시대의 공정’, 즉 AI가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의제라고 짚었다. 거대 플랫폼 기업이 데이터를 독점하고, 행정이 알고리즘 뒤로 숨고, 시민이 다시 객체로 밀려나는 미래는 결코 추상적인 우려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헨리 키신저가 마지막까지 주목한 ‘누가 AI 시대의 공공성을 지킬 것인가’라는 물음에 우리 사회가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AI 시민참여 플랫폼’, 시민집단지성을 정책으로 연결시키는 ‘디지털 공론장’ 역할
이 연장선에서 서 대표는 ‘AI 시민참여 플랫폼’ 구상을 내놨다. 시민의 목소리를 데이터로, 데이터를 정책으로, 정책을 다시 시민의 삶으로 이어지게 하는 새로운 공론 인프라, 즉 ‘디지털 공론장’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시민이 주거·부동산, 소비자 보호, 청렴·공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제기하는 의견과 제보를 상시적으로 수집·축적하고, 인공지능이 반복되는 문제와 구조적 이슈를 자동으로 식별하며, 회원과 연구진, 분야별 전문가가 이를 검증해 정책 의제와 입법 제안으로 발전시키는 구조다. 이는 서 대표가 고민하는 경실련의 새로운 정체성과 역할과도 맞닿아 있다.
“경실련은 권력과 자본을 비판하는 전통적 역할에서 멈추지 않고, 시민의 목소리를 정교한 정책 대안으로 다듬어 입법과 제도 개선으로 연결하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AI 시민참여 플랫폼’을 통해 시민의 참여가 정책 성과로 이어지는 경로를 다시 설계함으로써 시민단체의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 그것이 이 구상의 본질입니다.”
주진 기자 jj72@spor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