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김창수 기자 | 글로벌 탄소 배출량이 좀처럼 줄지 않는 가운데 올해부터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이 본격화 단계를 맞았다. 이로써 산업 전반에서 탄소가 사실상 관세로 기능하는 ‘뉴 노멀’ 시대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탄소 배출은 줄지 않고 규제는 더욱 강화되는 가운데 산업계는 탄소를 환경 이슈가 아닌 수출 원가이자 경쟁력 변수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 줄지 않는 글로벌 탄소배출량…EU, CBAM ‘칼’ 빼들어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은 37.8기가톤(Gt)으로 집계돼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재생에너지 확대에도 불구하고 전력 수요 증가와 화석연료 사용이 맞물리며 총 배출량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글로벌카본프로젝트(Global Carbon Project) 역시 최근 발표에서 2025년 화석연료 기반 CO₂ 배출이 38.1기가톤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감축 목표와 현실 사이 간극이 여전함을 시사한다.
탄소 배출 과다에 따른 환경 파괴 등 부작용이 심각한 만큼 비용 위험 신호도 시장에 계속 반영되고 있다. 2월 하반기 기준 EU 배출권(EUA) 가격은 톤당 71.6유로, 영국 배출권(UKA)은 47.6파운드, 미국 캘리포니아 CCA는 29.6달러, 중국 CEA는 78.7위안 수준이다. 국내 유상할당배출권(KAU)은 1만2750원 선에서 형성돼 있다.
이 기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5.2달러, 네덜란드 TTF 가스는 메가와트시(MWh)당 31.5유로 수준으로 집계됐다. 탄소가격과 에너지가격이 동시에 변동성을 보이는 상황에 놓인 제조업 분야의 원가 계산식은 더욱 복잡해졌다.
문제는 올해부터 CBAM이 과도기를 지나 본격 적용 단계(definitive regime)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2023~2025년은 수입 제품 내재 배출량을 보고하는 수준의 전환기였지만 올해부터는 실제 인증서 제출과 정산 의무가 부과된다.
적용 대상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으로 고(高)탄소 공정 기반 산업들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EU 배출권 가격과 연동된 CBAM 인증서 비용은 사실상 ‘탄소 관세’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 철강·시멘트·정유 등 각 업계 대책 마련 분주…“글로벌 규제 선제적 대응해야”
국내 산업계에서 철강업은 이런 흐름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유럽향(向) 판재류·강관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제품별 탄소 배출량 측정·보고·검증(MRV)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포스코는 전기로 확대와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등 저탄소 공정 전환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제철 역시 전기로 기반 생산 확대와 스크랩 활용도 제고 전략을 병행 중이다. 단기적으로는 CBAM 비용을 가격에 전가할 수 있는지, 중장기적으로는 탄소 집약도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알루미늄·시멘트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력 사용 비중이 높은 구조상 스코프2(간접배출) 관리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확대, 연료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은 단순한 ESG 활동이 아닌 수출 지속 여부를 좌우하는 경영 과제로 바뀌었다.
정유·석유화학 및 배터리 소재 기업 역시 직접 대상 품목이 아니더라도 공급망 배출 데이터 요구가 강화되며 비용 압박을 받고 있다. 유럽 완성차 및 소재 고객사들이 제품 단위 탄소발자국 공개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대책 마련이 불가피하다.
탄소가격 단기 등락폭은 산업에 혼선을 줄 수 있지만 거시적 흐름은 분명한 모습이다. 탄소 배출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규제는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제품별 탄소 집약도 관리, 설비 전환 투자, 데이터 검증 체계 구축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대응해야 한다. 단순히 배출권을 구매해 맞추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탄소가 명목상 환경비용을 넘어 실질적 무역비용으로 전환되는 원년”이라며 “각 기업들은 배출 데이터를 정교하게 산정하고 공정 전환과 에너지 믹스 개선을 병행, 글로벌 규제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