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경영진 책임성 대폭 강화
한국 기업문화, ‘투명성’과 ‘책임경영’으로 대전환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국회가 3일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상법 개정안을 전격 통과시키면서 국내 기업, 특히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에 중대한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번 개정안은 ‘기업의 헌법’이라 불리는 상법을 20여 년 만에 대대적으로 손질한 것으로 그 파장은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한국 자본시장과 기업문화의 체질을 바꾸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상법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모든 주주’로 확대하는 데 있다. 앞으로는 이사회가 특정 대주주나 오너 일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경영진에게 주주 전체의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할 법적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그동안 문제로 지적돼 온 ‘대주주 전횡’과 ‘편향된 의사결정’에 제동을 거는 효과가 기대된다.
◆ ‘3%룰’ 도입 등 소액주주 권익 실질적 확대
이번 개정안에는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이 포함됐다. 이 조항은 그간 대주주가 사실상 모든 감사위원을 좌지우지하며 이사회 감시기능이 유명무실했던 현실을 개선할 제도적 장치다.
여기에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 및 집중투표제 확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등도 도입되면서 소액주주들이 이사회 구성에 실질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국내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였던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의 해소와 글로벌 투자자 신뢰 회복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재벌 기업 경영권 승계 ‘속도 저하’와 ‘지배력 약화’ 현실화
상법개정안의 핵심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상충 감시 강화’에 있다. 재계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간 재벌 오너 일가는 계열사 간 합병,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물적분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배력을 강화하며 경영권 승계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특히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됨에 따라 대주주가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장악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편법적 지배력 확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법적 기반 제도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실제 LS그룹, 한화그룹 등은 이미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커지면서 승계 작업의 속도 저하와 그룹 전체 지분율 하락 등 지배력 약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오너 일가의 승계를 위한 무리한 합병이나 자본거래가 소액주주 반대와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오너 일가는 ‘본인 자금’ 투입이나 증여세 납부 등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한 마디로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는 더욱 까다로워지고 소액주주와 일반주주의 권익은 한층 더 강화되는 셈이다.
반면 일부에서는 소규모 합병 요건 완화, 삼각합병·삼각분할합병·역삼각합병 허용 등으로 오히려 재벌의 경영권 승계가 쉬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주주총회 생략 등 특혜 논란을 줄이기 위해 심의위원회 설치 등 견제 장치도 병행될 예정이다.
◆ 기업 투자·고용·경제 활성화 기대와 우려 교차
상법개정안이 기업 투자와 고용, 경제활성화에 미칠 영향을 두고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긍정적 측면에선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와 소액주주 권익 강화로 시장 신뢰가 높아지고 외국인 투자자 유입과 자본시장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주주가치 제고,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주 친화 정책이 늘어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와 주가 상승, 투자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실제 단일상장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에 성공한 기업의 주가가 상승한 사례도 있다. 또한 이사회 내 책임경영이 강화되면 기업의 장기적 성장 전략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촉진돼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경영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재계는 “경영 판단의 자율성 위축, 소송 리스크 증가,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 가능성 확대” 등을 우려한다. 특히 법 시행 즉시 기업 현장에 혼란이 발생하고 장기 투자 위축, 고용 감소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일각에서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위축되고 소송 리스크 증가, 경영권 분쟁 확대 등으로 기업의 투자·고용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재계는 “경영활동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약될 경우 신성장 동력 발굴과 혁신이 저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번 상법개정안이 기업 투자와 고용,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경영 위축과 시장 혼란을 불러올지는 향후 기업과 주주, 시장의 대응에 달렸다. ‘주주 시대’로의 대전환, 그 첫 시험대에 한국 경제가 올라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