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한스경제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ESG 공시는 지금 거대한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ESG 보고서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나 친환경 경영을 소개하는 홍보성 자료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 ESG 공시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판단하는 투자 정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있다.
ISSB가 2023년 발표한 IFRS S1(일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과 IFRS S2(기후 관련 공시기준)는 세계 최초의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준선이란 각국이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국제기준을 뜻한다. 국가별 특성과 정책에 따라 추가공시를 요구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투자자가 기업을 비교·평가하기 위한 최소 수준의 정보는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 ISSB의 철학이다.
기준선의 핵심에는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가 있다. IFRS S2는 TCFD의 철학과 구조를 사실상 그대로 계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버넌스·전략·위험관리·지표 및 목표라는 네 개의 축은 TCFD가 처음 제시한 프레임워크이며, 세계 각국 기후공시 기준의 공통 언어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환경보호를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TCFD는 기후변화를 환경문제가 아닌 '재무적 위험'으로 정의했다. 폭염과 홍수 같은 ‘물리적 위험’뿐 아니라 탄소중립 정책, 탄소가격제, 기술 변화, 소비자 인식 변화 등 ‘전환 위험’이 기업의 매출·비용·자산가치·공급망·투자계획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기업은 이제 기후가 미래 현금흐름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투자자에게 설명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하지만 기후는 시작에 불과했다. 국제사회는 곧 시선을 자연으로 넓혔다. 생물다양성 감소, 산림 훼손, 토양 황폐화, 수자원 부족은 더 이상 환경단체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상당수는 '자연자본'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연의 훼손은 곧 생산 차질과 원가 상승, 공급망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출범한 것이 TNFD(Task 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다. TNFD는 TCFD와 동일한 네 개의 공시 구조를 유지하면서 대상만 기후에서 자연으로 확장했다. 기업은 LEAP 접근법을 활용해 자연과의 접점, 자연에 대한 영향과 의존도, 그리고 이 영향과 의존도가 재무성과와 사업 지속가능성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치는가를 진단하고, 관리와 공시까지 체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TCFD가 기후변화와 탄소배출이 기업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을 중심으로 했다면, TNFD는 기업과 자연 생태계의 상호의존성과 자연관련 리스크·기회를 함께 평가하는 체계다. 자연자본을 핵심 경영자산으로 인식하고, 기업의 장기 경쟁력과 회복탄력성까지 평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 글로벌 공시 프레임워크는 세 번째 단계,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기후와 자연에 이어 인권과 노동, 공급망, 지역사회, 소비자, 디지털 권리를 포괄하는 사회분야 공시체계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대표적 흐름이 TISFD(Task force on Inequality and Social-related Financial Disclosures)다. 국제기준으로 완전히 정착된 단계는 아니지만, 앞으로 발표될 논의는 ‘사람’을 중심에 둔 지속가능성 공시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은 수십 개국에 걸쳐 있다. 강제노동, 아동노동, 산업재해, 지역사회 갈등, 개인정보 보호, 인공지능(AI) 윤리 같은 사회적 이슈는 더 이상 평판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런 요소를 기업의 장기 리스크와 직접 연결해 평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람과 관련된 위험 역시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재무적 요소라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TCFD, TNFD, TISFD가 서로 다른 기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ESG를 기반으로 자연자본과 사회관계자본의 개념을 확장하며 발전해 왔다는 점이다. 이들 체계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은 지속가능성이 곧 기업가치라는 명제에 있다. 기후는 기업의 위험을 설명하고, 자연은 기업이 의존하는 생태계와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설명하며, 사회는 기업을 둘러싼 사람·공급망·공동체와의 관계를 조명한다. 이 모든 요소는 결국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과 재무성과, 투자가치로 수렴한다.
주목할 또 하나의 변화는 유럽연합(EU)의 접근 방식이다. ISSB가 투자자 중심의 '단일 중대성'을 채택한 반면, EU의 지속가능성보고기준(ESRS)은 기업이 재무적으로 영향을 받는 요소뿐 아니라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고려하는 '이중 중대성'을 채택하고 있다.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방향은 같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다 객관적이고 비교 가능하게 평가할 수 있는 국제적 공시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ISSB가 제시한 기준선 위에 국가와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기준이 더해지는 구조가 점차 자리 잡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ESG 공시를 단순한 규제 대응이나 보고서 작성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투자자는 더 이상 화려한 ESG 활동을 보지 않는다. 기업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그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으며, 미래의 기회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결국 ESG 공시의 본질은 '얼마나 착한 기업인가'를 증명하는 데 있지 않다. '얼마나 지속가능한 기업인가'를 설명하는 데 있다.
TCFD가 기후를 열었고, TNFD가 자연으로 확장했으며, 이제 사회적 가치와 인권을 포괄하는 새로운 공시 프레임워크, 즉 TISFD가 그 뒤를 잇고 있다. ESG 공시는 환경, 자연, 사람을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기업의 미래가치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언어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