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한스경제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영화 ‘오디세이’는 러닝타임 내내 강렬한 서사와 시각적 몰입감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눈여겨볼 대목은 오디세우스를 전쟁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과오, 그리고 오만의 대가를 짊어진 '참회자'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영웅의 귀환이라는 익숙한 서사에 인간적인 고뇌와 성찰을 더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왜 오디세우스를 승리한 영웅이 아닌 참회자로 그렸을까. 어쩌면 그 출발점에는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는 오늘날의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며, 누구도 자신이 내린 선택의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오디세우스의 길고 고통스러운 귀환 여정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수많은 낯선 땅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 여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가 낯선 이를 어떻게 맞이하고 보호하며, 다시 떠나보낼 것인가 하는 '환대의 규범'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독특한 사회적 관습이 있었다. 바로 '크세니아'다. 크세니아는 손님을 친절하게 대하는 예절에 그치지 않았다. 낯선 이방인과도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함부로 배척하지 않는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었다. 주목할 점은 환대를 개인의 선의에만 맡기지 않고 공동체가 중시해야 할 의무와 질서로 인식했다는데 있다.
오늘날 ESG가 지향하는 본질과 가치도 이러한 배려와 책임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Who Cares Wins(배려하는 자가 승리한다)’다. 2004년 유엔글로벌콤팩트와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제시한 이 명제는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를 투자와 기업경영의 중요한 요소로 통합할 때 장기적으로 더 나은 시장과 지속가능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누가 관심을 갖는 가’라는 질문은 ‘누가 책임지는 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ESG는 이 책임의 범위를 기업의 울타리 밖으로 확장한다. 주주뿐 아니라 노동자와 소비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나아가 미래세대까지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가 강조하는 ‘Leave no one behind’, 즉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한다’는 원칙과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가치의 사상적 맥락은 18세기 애덤 스미스가 말한 ‘동감’(Sympathy)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미스는 저서 ‘도덕 감정론’에서 인간이 타인의 기쁨과 고통에 공감하고 자신의 행동을 타인의 시선에서 성찰할 수 있는 존재임을 설명했다.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처지와 감정을 헤아리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크세니아'와 '동감', 그리고 오늘날의 ‘Who Cares Wins’와 ‘Leave no one behind’는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에서 등장했지만, 그 밑바탕에는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흐른다. ”나의 이익만을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의 삶과 공동체의 미래까지 생각할 것인가.“ 모두 시대를 달리해 반복해서 등장한 이 질문이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이루며 오늘날 ESG라는 현대적 개념에서 다시 만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속가능성의 근간에는 언제나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그 관계에서 비롯되는 책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의 귀환 역시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된 여정은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과 환대가 있었기에 긴 귀향의 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가 통과한 시간 속에서 타인은 때로 시련과 장애물이었지만, 때로는 위기를 넘어설 힘이 되어주었다. 결국 그의 귀환은 한 영웅의 의지만으로 이뤄낸 승리가 아니라, 수많은 만남과 관계가 함께 만들어낸 여정이었다.
기업의 ESG 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늘날 기업가치와 지속가능성은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거나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는 ‘휴브리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책임 있게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비로소 형성되고 축적된다. 따라서 ESG는 단순히 지표만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다.
ESG 공시도 마찬가지다. 공시는 기업의 책임을 선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으며, 어떤 위험과 기회를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데이터와 정보로 설명하는 ‘책임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ESG는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는 현대적 사회계약으로 볼 수 있다.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은 크세니아를 통해 낯선 이와의 관계에서도 지켜야 할 책임과 질서를 고민했다. 애덤 스미스는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인간의 도덕적 감정을 설명했다. 오늘날 ESG는 이러한 관심과 책임의 범위를 기업경영과 금융, 자본시장으로 확장하고 있다.
시대와 언어는 달라졌지만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중요한 자산이 ‘서로에 대한 책임과 신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크세니아가 낯선 이를 향한 고대의 환대였다면, ESG는 이해관계자를 향한 현대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의 출발점은 거창한 구호나 숫자에만 있지 않다.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내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까지 함께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오디세이가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도 여기에 있다. 영웅의 귀환은 혼자만의 승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정에서 맺은 관계와 신뢰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수천 년 전 이야기는 시간의 간극을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혼자 목적지에 도착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를 배려하고 책임지며,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에 도착할 것인가.”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은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