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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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칼럼] 코스피 8000 시대의 역설… 낙수효과 없는 ‘그들만의 리그’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6-06-15 16:40:39 조회수 24

| 서울=한스경제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반도체 초호황은 국내 증시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일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역대급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성과급 역시 수억 원대에 달할 정도다. 시장에서는 주가 1만 포인트 시대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숫자 뒤에는 전혀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 중소 협력업체와 자영업자, 지방 제조업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상당수는 여전히 고물가와 소비 침체, 금리 부담 속에서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공급망 최전선에서 원가 상승과 납품단가 압박을 감내하는 하청·협력업체들에게 대기업의 역 대급 실적은 체감하기 어려운 남의 이야기와 다름없다.

같은 산업 생태계 안에서도 누군가는 초과이익을 누리는 반면, 누군가는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오늘날 한국 경제의 민낯이다. 이 현상은 단순한 경기 양극화로 치부할 수 없다. 경제적 과실이 특정 산업과 기업, 특정 자본과 노동에 집중되는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본질은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한국경제에서는 일정 부분 ‘낙수효과’가 실제로 작동했다. 대기업의 성장은 협력업체의 성장으로 이어졌고, 수출 증가는 고용 확대와 소비 진작을 견인했다. 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산업 생태계로 확산되면서 성장의 과실이 경제 전반에 공유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초격차 기술기업 중심의 성장 구조 속에서 이익은 점점 더 특정 산업과 자산에 집중되고 있다. AI·반도체·플랫폼 산업과 금융자산을 보유한 계층은 빠르게 부를 축적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산업과 계층은 상대적 박탈감과 생존 압박 속에 머문다. 낙수는 멈췄고, 대신 K자형 양극화의 균열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대만 경제는 이러한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TSMC를 중심으로 반도체 수출이 급증하면서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13.69%를 기록했고, 주식시장 역시 세계 5위 규모의 시가총액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국가 경제와 증시가 기록적인 호황에도 이를 체감하는 국민은 기대만큼 많지 않다.  한 조사에 따르면 대만의 국내 경제상황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40.2%에 그친 반면, ‘나쁘다’는 응답은 55.1%에 달했다. 높은 성장률과 주가만으로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경제적 만족도를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코스피가 8000선을 돌파하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상향되고 있지만, 상당수 개인투자자와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OECD가 전망한 한국의 잠재성장률 역시 올해 1.66%, 내년 1.52%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경제지표상 성장과 국민이 체감하는 성장 사이의 간극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장의 성과가 산업 생태계 전반과 국민의 삶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ESG의 본질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ESG는 단순한 친환경 활동이나 사회공헌이 아니다. 그 핵심은 성장의 결과가 특정 집단에만 집중되지 않고 경제 생태계 전체의 지속가능성으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데 있다.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강조하는 'Leave No One Behind(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성장)'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결국 한국 사회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성장의 부족이 아니라 성장의 단절이다. 기업의 영업이익과 주가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더라도 그 성과가 협력업체와 지역경제, 청년 일자리, 중소기업 혁신으로 확산되지 못한다면 성장의 온기는 소수에게만 머물 수밖에 없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과 ‘도덕 감정론’을 통해 강조한 것도 시장의 효율성과 사회적 신뢰의 균형이었다. 시장경제가 지속가능하려면 부의 창출만큼 부의 순환도 중요하다. 성장의 과실이 특정 기업과 특정 계층 안에서만 머무는 순간 시장은 역동성을 잃고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될 위험이 커진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대기업 초과이윤의 사회적 환원과 재분배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성장의 성과가 산업 생태계와 국민의 삶으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회적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낙수효과가 약화된 오늘날 한국 경제의 과제는 단순히 성장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연결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성장의 과실이 특정 계층이나 산업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순환하는 지속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사상 최고 주가와 사상 최저 체감경기가 공존하는 역설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한국 경제는 '성장하는 나라'이면서 동시에 '행복하지 않은 사회'라는 모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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