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장
ESG 이중 중대성으로 읽는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
재무제표, 단순숫자의 집합이 아닌 이해관계의 지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핵심 원칙…균형·최적화 필요
어느 한 쪽의 전유물이 되서는 안되는 기업 이익에 관한 AI 이미지.
과거 기업의 재무제표는 주주와 투자자를 위한 성적표에 가까웠다. 매출과 이익, 자산과 부채를 통해 수익성과 안정성을 평가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ESG 시대의 재무제표는 더 이상 단순한 숫자의 집합이 아니다. 기업이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회적 가치와 위험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이해관계의 지도’로 읽히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개념이 바로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이다.
최근 글로벌 ESG 공시체계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 잡은 이 개념은, 기업 활동이 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Inside-out)과 반대로 사회·환경적 변화가 기업 재무에 미치는 영향(Outside-in)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기업은 단순히 “얼마를 벌었는가”를 넘어 “누구와 어떻게 가치를 나누고 있는가”까지 설명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이러한 관점에서 재무제표는 단순한 숫자의 집합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긴밀하게 연결된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매출은 소비자의 신뢰와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영업이익은 투자자들이 공급한 자본을 기반으로 기업이 밸류체인 전반에서 창출한 부가가치다. 세전이익은 정부의 조세 기반과 맞닿아 있고, 당기순이익은 주주와 임직원 간 가치배분의 문제로 이어진다.
결국 기업의 이익은 특정 집단만의 성과가 아니라, 소비자·직원·협력사·정부·지역사회·주주가 함께 만들어낸 공동의 결과물에 가깝다.
ESG의 사회(S) 영역은 바로 이 관계의 균형을 강조한다. 사회적 가치는 단순한 기부나 사회공헌이 아니라, 기업이 이해관계자와 지속가능한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속에서 형성된다.
환경(E)이 기업의 외부효과를 줄이는 문제라면, 사회(S)는 기업 내외부의 이해관계를 얼마나 조화롭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다. 지배구조(G)는 이 균형을 특정 집단의 힘이 아닌, 투명하고 독립적인 의사결정 체계 안에서 유지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논란이 된 삼성전자의 노사 성과급 결정은 ESG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함의를 던진다. 물론 첨단기술 산업에서 우수 인재 확보와 직원 보상은 기업 경쟁력 유지의 핵심 조건이다.
다만 반도체 산업처럼 대규모 선행투자와 장기 연구개발이 필수적인 산업에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과 직접 연동하는 구조가 자칫 단기 실적 중심의 경영 압력을 키울 수 있다.
이는 미래 투자 여력과 연구개발의 지속성, 공급망 안정성은 물론 장기적인 주주가치와도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이중 중대성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가치배분은 단순한 노사 합의의 문제가 아니다. 직원 보상 확대가 단기적으로는 사회적 가치창출로 보일 수 있지만, 그 결과가 장기 투자 축소나 미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결국 기업가치 훼손이라는 재무적 위험으로 되돌아온다.
즉 사회적 영향과 재무적 영향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 연결된 구조다. 특정 이해관계자에 편중된 의사결정이 ESG 본래 취지와 충돌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종종 특정 집단의 권한 강화로 오해되지만, 그 본질은 다양한 이해관계의 균형과 최적화에 있다. 이는 주주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지, 특정 이해관계자의 우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철학이 아니다.
핵심은 어느 한 집단의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균형적 가치배분에 있다.
최근 상법 개정 논의와 함께 부각되고 있는 이사의 주주충실의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함께 읽힐 필요가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단기 주가 관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기업가치와 주주가치의 지속가능한 보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경영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중요하다.
만약 현행 성과급 구조가 장기 투자 축소나 미래 현금흐름 약화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면, 이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원칙뿐 아니라 이사의 주주충실의무와도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결국 ESG 시대의 재무제표는 단순한 회계 숫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기업이 누구의 이해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으며, 미래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추구하고 있는지가 담겨 있다.
ESG의 본질은 특정 집단만을 위한 고정된 몫을 정하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설계하느냐에 있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이 던지는 진짜 질문 역시 결국 여기에 맞닿아 있다. 기업의 이익은 어느 한쪽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