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스경제=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탄광 속에서 가장 먼저 쓰러지는 카나리아는 위험의 원인이 아니다. 인간보다 앞서 유독가스를 감지해, 아직 되돌릴 수 있는 시간 안에 경고를 보내는 조기경보 장치다.
반면, 헤겔이 말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언제나 황혼이 깃든 뒤에야 날아오른다. 모든 사건이 지나간 뒤, 결과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후적 지혜의 상징이다.
오늘날 많은 기업의 ESG 전략은 여전히 이 부엉이를 기다리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문제가 가시화되고 규제가 확정된 이후에야 대응에 나서는 구조다. 그러나 ESG의 본질은 ‘정답을 맞히는 예측’에 있지 않다.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대에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고 구조화해 관리하는 의사결정 체계다. 그리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충격이 기업의 손익과 기업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가정하고, 그 가능성에 대비하는 시나리오 기반 경영이다. ESG는 사건을 해석하는 언어가 아니라, 사건을 피하거나 완충하기 위한 경영의 조기 경보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
ESG는 바로 이 시나리오 경영을 기업 내부에 제도화하는 도구다. 환경(E)은 더 이상 기후변화라는 단일 변수가 아니다. 탄소가격의 변동, 환경규제 강도의 차이, 에너지 기술 전환 속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서로 얽히며 복합적인 리스크로 작동한다. 사회(S)는 중대재해, 인권 이슈, 데이터 보호, AI 규제 강화가 동시에 작동하며 기업 운영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시험한다. 지배구조(G)는 내부통제의 실패나 보상체계의 왜곡이 단번에 시장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영역이다.
따라서 ESG는 항목을 나열하는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어떤 리스크가 결합돼 기업가치에 충격을 주는지, 그 영향 함수(impact function)를 식별하고 관리하는 체계여야 한다. 핵심은 ‘무엇을 하고 있는 가’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동시에 작동할 때 가장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하는 가’를 사전에 가정하고 대비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의 ESG는 여전히 ‘미네르바의 부엉이식’ 대응에 머물러 있다. 사고가 발생한 뒤 사과문을 내고, 규제가 확정된 이후 조직을 만들며, 공시 시점에 맞춰 보고서를 정리한다. 이는 리스크 관리라기보다 사후 설명에 가깝다. 불확실성과 복합위기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이러한 방식은 결과적으로 기업의 손실과 신뢰 훼손을 키우는 구조로 작동한다.
결국 규범과 제도의 시행을 기다린 뒤에야 움직이는 대응 방식으로는, 그보다 앞서 전개되는 시장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제도는 언제나 위험이 가시화된 이후에 작동하고, 시장은 그 이전에 이미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진정한 ESG는 규제에 반응하는 체계가 아니라,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위험을 먼저 감지하고 경고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지속가능성 보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재정의 될 필요가 있다. 보고 의무화가 확정된 이후 지표와 항목을 맞추는 대응은 더 이상 전략이 아니다. 공시 기준은 언제나 기업의 준비 속도보다 빠르게 진화해 왔고, 규제가 가시화되는 시점에는 이미 시장과 투자자의 기대 수준이 한 단계 앞서 움직인다.
따라서 지속가능성 보고는 규제 대응 문서가 아니라, 기업이 어떤 리스크를 인식하고 있으며 리스크를 어떤 시나리오로 관리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전략적 도구여야 한다. 무엇을 공개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위험을 감지했고 그 신호를 어떻게 의사결정에 반영하고 있는지가 보고서의 본질이 돼야 한다.
특히 ISSB를 비롯한 글로벌 공시 체계는 ‘무엇을 했는가 ’보다 ‘어떤 위험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 가’를 묻는다. 이는 보고의 목적이 과거 성과를 나열하는 데 있지 않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영향과 그 관리 체계를 자본시장에 설명하는데 있음을 의미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지혜롭다. 그러나 기업 경영에 필요한 것은 사후 해석의 지혜가 아니라, 사전 감지의 민감성과 구조화된 대응 능력이다. ESG는 미래를 맞히기 위한 예언이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성이 현재의 의사결정에 반영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다.
2026년은 ESG가 더 이상 준비와 논의의 영역에 머무를 수 없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ISSB 기반 공시 체계의 본격 정렬, 각국의 기후·공급망·지배구조 규제 강화, 그리고 탄소가격과 자본비용의 연계는 ESG를 보고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경영성과와 리스크 관리체계의 문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ESG의 위험과 기회는 모든 기업 앞에 동일하게 놓여있지만,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극명하게 갈린다. ESG의 향방은 결국 선택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의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드는 ‘부엉이의 시간’이 아니라, 위기의 공기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카나리아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