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저마다의 다짐과 함께 2026년 병오년이 밝았다. 하지만 신년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장면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된다. 이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라기보다, 새로운 결심이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습성과 충돌하면서도 이를 대체할 만큼 충분히 내면화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이처럼 행동의 변화는 단발적인 결단이나 선언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 인간의 선택과 판단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일상의 규칙, 즉 삶의 ‘습관적 구조’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을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아비투스’란 삶의 경험이 반복·축적되며 형성된 체화된 성향이자, 개인의 판단과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이끄는 내면화된 기준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이나 행동을 ‘당연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 이면에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길들여진 ‘구조적 습성’이 작동하고 있다.
여기서 부르디외가 특히 주목한 점은 ‘아비투스’가 단순한 개인적 습관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경제·문화·사회·상징·신체·정서자본 등 여섯 가지 자본이 상호작용하며 ‘아비투스’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개인의 행동과 판단은 이 자본들이 어떻게 축적되고 배분되었는지에 따라 규정되며, 이는 곧 삶의 선택과 경로를 구조적으로 제한하거나 확장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개인은 이처럼 다양한 자본을 어떻게 축적하고 배분하며 결합하느냐에 따라 고유한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형성하게 된다. 결국 ‘아비투스’란 단기적인 결심이나 태도 변화로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자본이 장기간 상호작용하며 축적된 결과로 형성된 내면화된 전략의 구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기업이 직면한 ESG 중심의 경영 전환과도 맞닿아 있다. 전통적으로 기업의 ‘아비투스’는 재무·제조자본을 핵심 축으로 한 주주자본주의 위에서 형성돼 왔으며, 비용 절감과 단기 실적, 주주가치 극대화는 전략과 조직문화 전반을 관통하는 무의식적 판단 기준으로 작동해 왔다. 그 결과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는 오랜 기간 주주 중심 논리에 최적화된 구조로 고착돼 왔다.
그러나 글로벌 경영환경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급속히 이동하며 ESG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성패는 주주를 넘어 소비자·지역사회·공급망·환경·규제기관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며, 이는 단기수익성과 비용효율 중심의 기존 전략이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이는 기업이 오랜 시간 체화해 온 주주자본주의적 ‘아비투스’를 해체하고, 이해관계자 중심의 새로운 경영 습성을 재구성해야 하는 구조적 전환의 문제다. 개인의 결심이 습관을 넘어서지 못하면 작심삼일로 끝나듯, 기업 역시 내면화된 의사결정 기준을 전환하지 못한다면 ESG는 전략이 아닌 선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부르디외가 제시한 개인 자본의 다층적 구조는 이제 기업 차원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ESG 경영에서 국제통합보고위원회(IIRC)가 제시한 6대 자본(재무·제조·지적·인적·사회·자연) 체계는, 기업이 축적해야 할 자본의 세계가 이미 전통적 경계를 넘어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기업의 경쟁력은 재무·제조자본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탄소감축 역량과 사회적 신뢰, 인재의 역량, 공급망의 투명성 등 새로운 확장 자본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어떻게 관리하는가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러한 기업 ‘아비투스’의 전환을 제도적으로 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체계의 본격적 시행이다. ISSB는 IFRS S1·S2를 통해 ESG를 단순한 비재무정보가 아닌, 재무성과와 직결된 기업가치 판단 정보로 재정의했으며, EU의 CSRD는 ‘이중 중대성’ 개념을 제도화해 기업 활동의 사회·환경적 영향과 재무적 영향을 동시에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과거 기업의 ‘아비투스’가 주주라는 단일한 시선에 수렴돼 있었다면, 이제 기업은 그 경계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주주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보내는 신호를 동시에 감지하고, 이를 전략적 의사결정에 체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다시점(多視點) 구조를 갖춰야 할 시점이다.
ESG는 이러한 변화된 자본구조와 판단기준을 기업의 새로운 ‘아비투스’로 정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결국 ESG 경영은 기업의 생존을 위한 선택적 전략이 아니라, 초불확실성 시대에 일상의 의사결정을 관통하는 지속가능성의 기준점이자,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새로운 ‘아비투스’가 바로 ESG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ESG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변화한 규범 환경 속에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체화해야 할 ‘아비투스’다. ESG를 보고서나 공시 형식의 문제로 한정하는 순간 그 의미는 축소된다. 전략 수립과 자본 배분, 투자 판단 전반을 재구성하는 구조적 전환의 과제로 인식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