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ESG 정보공시 확산세 둔화…자기규율적 거버넌스로 인식 절실
| 한스경제=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국내 기업들의 ESG 정보공시 확산세가 최근 들어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중 ESG 보고서를 발간한 기업 수는 2020년 38곳에서 2024년 204곳으로 크게 늘었으나, 2025년 7월 말 기준 증가폭은 전년 대비 14곳에 그치는 데 그쳤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확대 추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이미 글로벌 차원에서 IFRS 산하 ISSB, EU의 CSRD, 미국 SEC 기후공시 규칙 등 주요 ESG 공시기준이 정립된 상황을 고려하면, 이 같은 둔화는 우리 기업들의 ESG 경영이 선진국 대비 뒤처지고 있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둔화의 배경은 분명하다. 국내에서는 아직 ESG 의무 공시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고, 보고서 작성과 검증에 필요한 비용과 인력 부담도 상당하다. 여기에 대기업들이 이미 선제적으로 공시를 마무리하면서, 나머지 기업들은 국내 제도 시행 전까지 자발적 참여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정책의 일관성 부족과 시행 지연은 기업들로 하여금 ESG를 ‘지금 당장 추진하지 않아도 되는 과제’로 인식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ESG 경영에 대한 추진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ESG 정보공시가 이미 글로벌 경영의 기본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주요 글로벌 투자·평가기관과 공급망 참여 기업들은 ESG 정보를 투자 및 거래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공시를 하지 않는 기업은 ‘No Data, No Score’ 원칙에 따라 사실상 투자 유치나 평가 대상에서 제외되는 실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ESG 정보공시는 더 이상 단순한 보고 의무가 아니라, 글로벌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과제가 되고 있다. 탄소배출량, 산업재해, 사회적 포용, 이사회 다양성 등 비재무적인 ESG 요소들은 이미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와 전략적 우선순위를 재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ESG 정보공시가 기업 경영의 핵심 과제로 부상한 지금, 우리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전환점에 서 있다. 이제 단순히 재무제표상의 수치만으로는 고위험 비재무적 이슈들이 조직의 지속가능성과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0년간 재무제표 중심의 공시 시스템은 과거 실적에 기초한 정보 제공에 머물렀다. 그러나 ESG 이슈는 장기적·구조적으로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전통적인 재무정보만으로는 그 복합성과 파급력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ESG 공시는 기업의 정체성과 전략, 나아가 리스크 대응 역량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핵심 경영전략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ESG 공시는 단순한 의무를 넘어, 경영의 ‘메타인지’를 시험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메타인지’란 기업이 스스로의 한계와 인식 수준을 성찰하고, 이를 토대로 전략과 실행을 정렬하는 고차원적 사고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곧 기업이 내적 동기에 따라 자발적으로 지속가능성 수준을 진단하고, 그 결과에 맞춰 경영전략을 재정비하는 전략적 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ESG 공시는 공급망, 소비자, 투자자, 정책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ESG 경영은 더 이상 특정 투자자나 규제기관을 위한 도구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 전반과의 신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ESG 공시는 기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다원적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ESG 공시를 단기적 비용이나 규제 대응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태도는 실행력 부족을 낳고, 결과적으로 ESG 워싱 논란을 불러온다. 더 나아가 ‘메타인지’의 부재는 ESG에 대한 피상적 인식과 소모적 파행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ESG 공시는 투자자에 국한되지 않고 공급망, 소비자, 정책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신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핵심 수단이다. 따라서 외적 동기에만 의존하고 ‘메타인지’가 결여된 ESG 공시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규제 준수가 아닌 자기 규율적 거버넌스로 인식돼야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ESG 정보공시는 단순히 수치화된 성과를 나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기업의 미래 비전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서사와 철학을 담아야 한다. 그러나 단기 재무성과에 익숙한 기업들에게 이는 낯선 질문일 수 있다. 기업이 숫자 중심의 관행과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ESG 정보공시의 목적은 다원적 이해관계자의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하는 전략이 돼야 한다. 이는 외적 압력이나 규제 대응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의 ‘메타인지’에 달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