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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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HOW] K-배터리산업과 정의로운 전환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5-09-12 14:01:16 조회수 14
김선애 국민대 글로벌기후환경융합학부 연구교수
김선애 국민대 글로벌기후환경융합학부 연구교수

| 한스경제=김선애 국민대 글로벌기후환경융합학부 연구교수 |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 문제에 그치지 않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최근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과 ‘기후정의(Climate Justice)’가 핵심 키워드로 부상했다.

배터리 산업은 탄소중립 시대의 에너지 전환을 뒷받침하는 핵심 축이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전력 시스템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려면 불가피한 간헐성과 변동성을 안정화할 저장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배터리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 경쟁의 한복판에 놓인 전략 산업이기도 하다. 한국 배터리 산업은 지난 10여년 많은 성장을 누렸지만, 최근 복합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중국의 저가 공세, 미국과 유럽의 공급망 보호주의, ESG 규범 강화, 그리고 인권·환경 리스크가 교차하는 다층적 위협이 그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탈탄소 전환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피해를 보는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보호하고, 재교육·고용 안전망·지역경제 보완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최소화하자는 개념이다. 단순한 산업 구조 변화가 아니라 전환의 혜택을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자는 취지다. 기후정의는 기후위기의 책임과 영향이 불평등하게 분포한다는 점에서, 취약계층과 개도국이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분배적·절차적 정의를 모두 포함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이러한 기후정의 원칙을 정책적 틀로 구현하는 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배터리 공급망을 보면 불평등 구조가 뚜렷하다. 글로벌 사우스(개도국)는 리튬,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을 채굴하지만 환경 파괴와 노동 착취라는 비용을 떠안고 있다. 반면 글로벌 노스(선진국)는 가공·제조를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대기질 개선이라는 혜택을 누린다. 더 나아가 사용 후 배터리마저 글로벌 사우스로 흘러가 비공식적 재활용과 폐기로 이어지면서 보건·환경 피해가 다시 전가된다. 따라서 오늘날 정의로운 전환은 단순히 국내 고용과 지역경제 보호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공급망 차원의 불평등을 교정하는 정책 프레임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배터리 산업이 정의로운 전환 논의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이미 공급망 실사 지침(CSDDD, 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디지털 배터리 여권 등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 공급망 인권·환경의 ESG 리스크를 제도로 관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의 새로운 경쟁 규범으로 작동한다. 즉,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흐름을 간과한다면 기업의 평판 리스크는 물론 재무적 리스크로 직결되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동시에 EU의 정의로운 전환 전략은 단순 규제를 넘어, 정의로운 전환 기금(JTF, Just Transition Fund)을 통해 탈석탄 지역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전환시키고자 배터리와 그리드 같은 신성장 산업을 지원하며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역시 배터리·전기차 산업에 대한 대규모 세제 혜택과 고용 요건을 연계해 산업 전환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추진한 것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기업의 ESG 준수만을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 차원에서 배터리 산업을 정의로운 전환의 전략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종합 정책이 필요하다. 단순히 기술 확보를 통한 산업 성장 및 수출 확대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고용 안전망 구축, 재교육 프로그램, 포괄적 거버넌스 구축 외에 배터리 클러스터 지역경제 지원 등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포함하는 신성장 산업·고용정책을 접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배터리산업 지원정책을 수십만 개의 일자리 창출과 연계해 정의로운 전환 정책 프레임에 접목시켜야 산업 경쟁력과 사회적 합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K-배터리는 더 이상 단순한 수출 산업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글로벌 기후·산업 거버넌스에서 어떤 규범과 가치를 선도할 것인지 시험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한국이 진정한 배터리 강국으로 남으려면 이제 국가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산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기업이 ESG 규범 경쟁 시대에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본다. 배터리는 결국 기후위기 대응의 기술을 넘어, 경제안보와 사회적 전환의 척도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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