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장] 옛 항해자들에게 바다는 끝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런 바다를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는 정교한 지도가 필수였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지도가 있어도,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면 그 지도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특히 육지가 보이지 않는 광활한 해상에서는 자신의 좌표를 파악하는 일 자체가 가장 큰 도전이었다.
이처럼 대양을 항해하기 위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가”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명확히 아는 능력이었다. 방향을 잃지 않고 항로를 유지하려면 ‘위도’와 ‘경도’라는 두 좌표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중 ‘위도’는 북반구에서 북극성의 고도를 기준으로 비교적 쉽게 측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도’를 정확히 알아내는 일은 18세기 이전까지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구가 1시간마다 15도씩 자전하는 특성상 정확한 ‘경도’ 측정을 위해서는 거친 파도 위에서도 오차 없이 작동하는 정밀한 시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위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선박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고 올바른 항로를 유지하려면 ‘위도’와 ‘경도’를 동시에 파악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한 혁신이 바로 18세기 후반 영국의 시계공 ‘존 해리슨’이 개발한 항해용 정밀시계 ‘크로노미터 H4’였다. 그의 발명은 선박이 바다 위에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수많은 조난과 침몰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좌표를 좇는 항해의 교훈은 오늘날 기업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재 기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은 기후위기, 사회·경제적 양극화, 급변하는 소비자 트렌드, 복잡한 규제 환경 등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그 불확실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 선원들이 마주했던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무쌍한 대양과 다를 바 없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오늘날, 기업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항해하는 거대한 선박에 비유될 수 있다. 그리고 이 항해에서, 기업 역시 정확한 좌표를 파악해야만 방향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매출액, 영업이익, ROE, ROA, PER, PBR 등과 같은 재무지표를 활용해 ‘재무성과’라는 ‘위도’를 측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지표들은 기업의 과거와 현재의 위치를 보여주는 명확한 수치로,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익숙하다.
하지만 과거 항해자들이 ‘위도’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던 것처럼, 기업도 ‘재무성과’만으로는 지속가능한 미래의 항로를 설정할 수 없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본질적 자산인 비재무적 가치 역시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는 기업 경영의 지도를 읽는 데 있어 ‘경도’와 같은 핵심 좌표를 제공한다.
탄소배출 감축, 기후변화 대응, 이해관계자 만족, 인적 자원의 다양성과 포용성, 공급망 관리, 투명한 지배구조, 윤리적 경영 등과 같은 비재무적 요소들은 이제 기업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투자자들은 기업의 ESG 역량을 기준으로 자금을 운용하고, 소비자들은 가치소비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며, 각국 정부와 규제기관은 ESG 기준을 법제화하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ESG를 외면하는 기업은, 마치 ‘경도’를 측정하지 못해 방향을 잃고 조난당한 선박과 같다. 좌표를 상실한 채 항로를 잃은 기업은 결국 경영 실패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좌표를 잃은 지속가능경영의 붕괴는 곧 기업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위기로 이어진다.
결국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이란, ‘재무성과’라는 위도와 ‘ESG 경영’이라는 경도가 조화를 이루며 나아가는 장기 항해다. 이 중 어느 하나에만 의존하는 경영방식은 균형을 잃고 침몰한 선박처럼 위기를 피할 수 없다.
마치 직물이 씨줄과 날줄이 엮여야 견고한 직조물이 되듯 기업의 지속가능성 또한 재무요소와 비재무요소가 유기적으로 통합될 때 완성에 이른다. ESG는 이러한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도구이자,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현대판 나침반이다.
ESG는 도구이고 지속가능성은 방향이다. 초불확실성 시대에 ESG 경영을 통해 지속가능성의 좌표를 잃지 않는 기업만이 생존과 성장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