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ESG 회의론 팽배해지겠지만 제도화 과정 논쟁·조율은 필수"
[한스경제/ 이우종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은 역사적으로 최고조에 달했지만, 기후위기를 기업부문에서 다루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자본시장의 작동원리에 기초한 기업법 하에서 기업이 기후위기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해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와 관련해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이 겪는 주요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었다. 2022년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Exchange Commission)는 광범위한 기후 변화 공시를 요구하는 공개초안을 발표했다. 이 초안은 발표 직후부터 논란이 고, 그 결과 SEC는 2024년 3월까지 공시기준을 확정하지 못했다. 확정안이 초안보다 훨씬 후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법적인 분쟁을 일으켰고, SEC는 공시기준의 시행을 무기한 연기했다. 법적 쟁점은, SEC가 기업의 기후 변화 영향과 관련된 공시를 요구함으로써 투자자를 보호하고,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유지하며, 미국 자본 시장에서 자본 형성을 촉진할 권한을 넘어서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즉 자본시장의 감독당국이 기업들에게 비재무정보의 공시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법에서 정한 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기업과 SEC가 재무정보 이외의 모든 정보를 다루는 것을 원천적으로 억제하려는 움직임도 존재한다. 미 하원의 빌 후이젠가(Bill Huizenga) 의원과 앤디 바(Andy Barr) 의원은 2023년 6월 23일 '중요성 요건 의무적용 법안(Mandatory Materiality Requirement Act)'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골자는 1933년 증권법과 1934년 증권거래법을 개정해 기업은 "공시해야 하는 정보가 해당 발행자에 대한 의결권 행사 또는 투자 의사결정과 관련해 중요한 경우에만 해당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라는 조항을 명시적으로 삽입한 것이다. 발의자들은 ”SEC가 제안한 기후 관련 공시기준은 기업들에게 불필요한 의무를 부과하며, 에너지 기업들의 자본 접근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미국의 에너지 안보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SEC의 기후위기 공시의무화에 대한 저항은, 기후위기를 다루기 위해 정확히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에 대한 시장의 합의가 부재하며, 자본시장이 이미 체계적으로 정비돼 있는 미국 같은 국가에서는 오히려 기후위기의 공시정보가 즉각적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저항을 촉발한 것은, 아마도 현재 기후위기에 관한 정보가 대부분 비재무적 지표로 구성돼 있어서 기업의 재무적 영향을 평가하는 방법론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기술적 한계일 것이다. 예를 들어, 해안 근처에 제조 공장을 둔 기업의 경우 해수면 상승의 잠재적 비용은 무엇일까? 현행 회계기준 하에서는 이러한 비용 중 대부분이 자산의 손상차손에 포함돼야 하겠지만 정확히 얼마를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집단적, 기술적 경험치는 아직 축적되지 않았다. 비재무적 지표와 기업의 재무적 영향 사이의 연관성을 스스로 학습해가야 하는 기업들의 부담이 미국 정치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그간 기후 관련 공시 의무화에 명시적으로 반대입장을 표방해왔다. 에너지 규제 완화를 통해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ESG에 대한 회의론은 더욱 팽배해질 것이다.
기후위기의 시급성을 고려하면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집단적 저항을 단순히 불필요한 시간낭비로 이해하는 것은 성급하다. 제도화의 과정에서 논쟁과 조율은 필수적이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과 달리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가 제정한 국제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적용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국가주도형인 우리 자본시장에서는, 기후위기 공시의무화와 관련해 기업들의 거센 저항을 맞닥뜨릴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제도와의 정합성에 대한 치밀한 검토를 생략한 채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이후 제도간 불일치로 인해 더 큰 혼란을 초래하거나, 제도간 불일치로 인한 후폭풍을 피하려는 소극적인 준법(compliance)을 유도하는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
여전히 많은 질문들이 남아 있다. 우리 법규범 하에서 지속가능성 공시의무화의 본질적, 절차적, 규범적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구성하려고 하는 지속가능성 공시정보는 다른 국가의, 다른 산업의, 다른 기업의, 다른 시점의 공시정보와 얼마나 비교 가능한가? 우리 기업들이 공시하는 기후위기 정보는 투자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정치는 이러한 담론들을 효과적으로 조율할 역량이 있는가?
의제의 보편성에 대해 충분히 설득하고 조율하지 못하면 의제가 정치를 결정하지 못하고 정치가 의제를 결정한다. 지구와 인류의 지속가능성 제고라는 대의에 복무하기 위한 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