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올해 다시 극단적인 기상 현상 기록이 갱신되었다. 열대야 일수 관측을 시작한 1923년 이후 가장 긴 열대야 연속 기록을 세웠다. 제주가 연속 열대야 47일을 기록해 종전 최대 기록인 2013년 44일을 넘어섰다. 전체 열대야 일수도 56일로 2022년 연간 최대 열대야 일수와 같다. 작년 7월은 세계 전체 월별 온도로 최고를 기록했는데 올해 7월 22일은 전 세계 평균 온도가 17.15℃로 관측 역사상 최고 기온이었다.
기후재난의 일상화 시대,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폭염과 폭우, 홍수와 가뭄, 한파와 우박 등 온갖 난폭하고 사나운 기상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에 직접적인 손상과 손실을 가할 수 있다. 문제의 여파는 더 넓다. 이상기후로 농어업이 타격을 받게 되면 농어민 등 해당 분야 종사자들이 직접적으로 손실과 피해를 볼 뿐 아니라 생산량 감소로 가격이 올라 모든 소비자에 영향이 미친다. 이른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 야기된다. 공급량의 절대적 감소에 유통관리 문제까지 더해지면, 올해 ‘금 사과’ 사태처럼 장바구니 물가가 급격히 오른다. 수입 먹을거리에도 이런 위험은 상존한다. 수출국도 기후위기에서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두 가지 위험을 안고 있는데, 이런 위험을 물리적 위험(Physical Risk)이라 한다.
다른 하나는 전환 위험(Transitional Risk)이다. 탄소중립이 국제 규범이 된 시대, 탄소문명을 떠받치고 있던 기존의 정책과 규제, 기술과 시장, 인식과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재생에너지발전,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히트펌프, 스마트그리드 등의 기술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은 탄소국경조정제와 탄소(관)세, 자동차 연비 규제와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 금지, 에코디자인과 디지털 여권, 지속가능성 실사지침, 기후공시 등 탄소 배출 규제를 겨냥한 정책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다. ESG 경영에 대한 투자사와 투자자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100%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내건 RE100 가입 기업들이 늘고 있으며 이들의 협력업체들에 대한 RE100 요구도 커지고 있다. 전방위적인 변화의 파고 앞에서 이런 변화를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따라가지도 못한다면 경제의 기초가 흔들릴 수 있다. 전환위험은 물리적 위험 못지않게, 어쩌면 더 심각하게, 우리 생존을 위협한다.
위기(危機)란 위험과 기회가 결합한 말이다. 탄소규제는 전환위험만이 아니라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위험에만 관심을 두고 두려워하거나 회피할 게 아니라 위험에 내재하는 기회를 포착해서 혁신을 통해 기회의 창을 열어야 한다. 배터리, 전기차, 히트펌프, 태양광패널 등의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탄소 혁신’은 해외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2022년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다양한 투자 세액 공제와 생산 세액 공제, 보조금 혜택을 누리며 한국 기업이 미국 내 외국인 투자자 1위로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IRA가 제공한 기회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재생에너지 관련 시장이 줄고 관련 일자리가 줄고 있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그런 기회를 만들어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장의 비용 부담을 우려해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이전 국가 목표는 그대로 두면서 산업부문 목표를 14.5%에서 11.4%로 낮췄다. 감축 목표를 낮출 게 아니라 목표 달성을 지원하고 돕는 역할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국은 기업의 재생에너지 전력 100% 달성이 가장 어려운, RE100 빈곤국으로 불리고 있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와 지속가능성 지침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노심초사 중인 기업이 부지기수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마주할 여러 규제를 이행하는 것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정부는 전환을 선도하는 기업에 대한 맞춤형 세액 공제와 함께 녹색수출 금융 지원, R&D 지원, 기업 컨설팅을 확대하고 더 강화해서 혁신을 끌어내야 한다.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아시아 첫 기후소송에 대한 첫 헌재 판결이었다. 2030년 감축 목표의 헌법 불합치 여부에 대한 심판청구를 기각하고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걸 문제 삼았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충분하지 않아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정부 대응이 미래 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였다. 이제 정부와 국회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2031년 이후에 대해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필요한 후속조처를 이행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2050 탄소중립이 가능할까를 물어서는 곤란하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탄소중립을 가능하게 만들지로. 탄소중립 달성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할 게 아니라 탄소중립을 해나가지 않을 때 우리가 물게 될 비용이 얼마인지 살펴야 한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