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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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C HOW 칼럼] ESG와 기초과학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4-08-28 14:03:46 조회수 113
                        남성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해양과학자
                        남성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해양과학자

[한스경제/남성현 서울대 교수] 올여름은 유난히 무덥다. 점점 더 심해진다. 그래도 태풍이 오면 비가 더위를 좀 식혀주기도 했는데, 이제 그런 ‘효자 태풍’도 보이지 않는다. 기후과학자들의 오랜 경고가 현실화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폭염과 열대야가 오래 지속되니 처서도 무색해졌다. 특히 올해는 제주, 강릉 등 해안 도시들의 폭염일수가 급증했는데, 바닷물로 둘러싸인 국토에 살면서 이런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곤란하다. 온대 바다였던 우리 주변은 점점 아열대 바다로 바뀌며,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르게 온난화 중이기 때문이다.

약 13억 8천 6백만 세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양의 전 세계 바닷물을 데우려면 어마어마한 열(熱, heat)이 필요하지만, 실제로 그만큼 열을 흡수하여 일단 데워진 바닷물은 잘 식지도 않는다. 앞으로도 온난화가 멈추길 기대하긴 어렵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구온난화로 증가한 열의 대부분(90% 이상)은 해양이 흡수했다. 지구온난화는 실질적으로 해양 온난화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해양에는 매초 4~5개, 매시간 14,400~18,000개, 하루에 3~4십만 개씩의 원자폭탄이 터지는 정도의 열에너지가 흡수 중이다. 바닷물의 수온이 오르고, 해수면도 오르고, 많은 바다 생물이 사라져 생물다양성을 잃으며, 우리 주변 바다가 쓰레기와 해파리로 뒤덮여도 매일의 일상, 먹고 사는 문제와는 무관해 보이니 괜찮을까? 아니 정말 무관할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유독 빠른 기온 상승이 진행 중인 이유도, 곳곳에서 폭염, 폭우, 가뭄, 산불, 산사태, 홍수를 포함한 극단적 재난이 심화하며 대형화하는 원인도, 해양 환경 변화에 대한 과학적 조사 없이는 근본 원인을 알기 어렵다. 언제 어느 바다에서 바닷물 수온이 얼마나 올라 해양생태계를 어떻게 바꾸고, 어느 곳 대기를 얼마나 데우고 식히며, 대기로 수증기를 얼마나 공급하여 우리를 둘러싼 미래 환경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기업들도 살아남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ESG 공시의무다. ESG의 E(환경), 그중에서도 최우선적 공시의무에 포함된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에 대한 정보를 공시하고 ESG 성과를 창출하려면, 기후변화에 동반되는 전 지구적 환경 변화에 대한 이해·진단·평가·예측이 필요하다. 기업 활동을 위해서도, 그리고 현명한 투자자와 소비자를 위해서도 이제 우리를 둘러싼 하늘과 땅과 바다의 환경 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후위기로 변화하는 지구환경은 과학적 원리에 따라 작동하므로 기후변화 영향을 제대로 진단·평가·예측하려면 기초과학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초과학의 도움 없이는 단기·중기·장기적으로 기업의 재무 상태와 성과, 그리고 현금 흐름에 기후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현실적으로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위험 요인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과 회복력 등에 대한 공시도, 불확실성에 대비한 시나리오 분석도, 위험관리와 대응 우선순위 결정도 불가능하다. 깐깐하고 스마트해진 투자자와 소비자를 잠시나마 속여보려는 그린워싱도 안 통한다. 결국, 몰락 시나리오만 남는다.

기초과학은 국내 ESG 논의에서 흔히 배제된다. 곧 의무화될 ESG 공시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과 정부 입장에서 다소 한가하게 들릴 수도 있는 기초과학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과 폐기물을 줄이는 등의 기술적·공학적 해법이나 기후 관련 법·제도·정책 효과 평가 등의 사회경제적 해법으로 눈앞의 처방에만 급급한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불안하기가 그지없다. 후발주자로서 빠르게 따라잡겠다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서 유례없는 산업화에는 성공했으나 기초부터 다져가는 연구가 부족해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의 도약이 지체되는 모습과 교차한다.

물론 기초과학적 원리까지 탐구하지 않더라도 사업장에 필요한 단순 기술 개발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래기후 대응력을 높여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선점하며 투자자와 소비자를 사로잡으려면 기초과학, 그것도 속성상 지구시스템의 각 권역에 아우러진 융복합적 기초과학인 지구환경과학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더는 간과하기 어렵다.

ESG로 표출되는 지속가능한발전으로의 글로벌 대세는 분명해 보인다. 더는 미루고, 피하고, 핑곗거리만 찾으며 몰락을 기다릴 수 없다.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처럼 ‘집단행동’과 ‘집단자살’ 중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과연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들, 글로벌 ESG 흐름이 멈추리라 안일하게 기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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