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연명 중앙대 교수] 국민연금같은 공적연금기금의 ESG 투자는 글로벌 패러다임이 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도 2018년 뒤늦게 스튜어드십코드가 도입되면서 의결권 행사 및 배당 관련 기업과의 대화 등에 머물던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범위가 임원 보수, 법령상 위반 그리고 ESG 등으로 확대되었다. 2019년에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기금 책임투자원칙’을 제정하여 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을 고려한 책임투자를 명문화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2022년 수탁자책임활동보고서’에 의하면 국민연금이 투자한 954개 상장기업 중 ESG 정기평가를 통해 중점관리사안으로 서한 발신이나 비공개면담 대상이 된 기업은 2021년 1개에 불과했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과 함께 ESG 투자 진전에 기대를 모았던 것은 ‘의결권전문위원회’를 대체하여 2020년에 법적 기구로 상설화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이었다. ‘수책위’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산하 조직으로 기금운용본부에서 판단하기 곤란한 의결권 및 ESG 관련 주주활동에 대한 사안을 검토 및 결정하는 중요한 기구이다. 2018년 출발 당시 ‘수책위’는 사용자, 노동자, 지역가입자단체가 추천하는 민간전문가 9인으로 구성되며, 이 중 3인은 상근전문위원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상설기구로서의 위상도 확보했다.
‘수책위’를 법정 상설기구로 만들 당시 논란이 되었던 것은 위원구성 문제이었다. 논란은 있었지만 ‘수책위’는 사용자, 노동자, 지역가입자 등 국민연금 관련 3개 단체가 추천하는 9인의 민간위원으로 구성하며, 정부위원은 배제하는 것으로 법제화되었다. 당시 이 결정은 정치로부터 수탁자책임활동의 의사결정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무리하게 찬성하면서 수천억원의 기금손실과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 경험이 반면교사가 된 것이다.
당시 복지부 보도자료에는 새로운 ‘수책위’ 구성에 대해 ‘기금운용의 주요 의사결정에 있어 가입자 대표성과 전문성이 모두 강화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국내에서 가장 공신력있는 ESG 평가 및 의안분석 기관인 ‘한국 ESG 기준원’(구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수책위’의 △위원회 개최 횟수 △논의 기업 수 △심의 안건 수 등 과거보다 현저하게 증가하여 상설화된 ‘수책위’가 실효성 있게 운영된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다.
2023년 ‘수책위’ 위원구성 방식이 근본적 변화를 겪었다. 가입자단체가 추천하는 6인의 비상근위원의 몫을 3인으로 줄이고 나머지 3명을 기금운용위원장(복지부장관)이 전문가단체로부터 추천받은 위원을 위촉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위원 추천 전문가단체는 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 관련 학회 등으로 알려졌는데 친자본적 색채가 강하고 기금운용위원장인 복지부장관이 위촉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입김이 강화될 구조가 마련된 것이다. 노동시민단체에서는 위원구성 변경으로 사용자 추천위원 2명 + 정부 추천위원 3명이 결합되어 의사결정 정족수의 과반을 차지하고 이것이 주주권행사의 독립성을 저해할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2023년에는 ‘수탁자책임활동지침’을 개정하여 지배구조 중심의 중점관리사안에 기후변화와 산업안전을 추가하였다. 대신 기존의 ESG 평가 2단계 하락 시 중점관리사안으로 선정하는 규정은 폐지되었다. 기존의 ESG 평가가 지표의 타당성과 신뢰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만큼 기후변화와 관련된 사안을 새롭게 주주활동의 중점관리사안으로 선정한 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국민연금기금은 1000조원을 넘어섰고 GDP 대비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적연금기금으로 등극하지 오래이다. 국내외적으로 막대한 국민연금기금의 ESG 관련 주주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 변경된 ‘수책위’의 구성 변화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공적연금기금운용은 정치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제1의 미덕이고 이것이 확보되어야 금융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민연금공단과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주주활동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노력해 온 여러 지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국민연금의 ESG 투자는 국민적, 정치적 신뢰가 확보되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