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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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C HOW 칼럼]세대 간 단절과 문화적 정서의 형성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4-07-24 15:13:46 조회수 44
   이찬규 중앙대학교 부총장(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찬규 중앙대학교 부총장(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스경제/ 이찬규 중앙대 부총장] 아버지 : 요즘 회사에서 신입직원들에게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면 반기지 않는 것 같아. 왜 그러지?   
아들 : 솔직히 말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석에서 나이 드신 분들과 이야기 하는 자체를 부담스러워 해요. 그 분들과는 생각이나 행동 방식이 너무 달라 이야기를 하다보면 많이 불편하고, 굳이 그걸 감수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지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중 세대 간 소통 단절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통합위원회(지표와 데이터로 본 세대갈등 이슈페이퍼, 2024.3.19)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모든 세대에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는 응답이 2013년 47%에 비해 2022년 ‘63.2%’로 크게 늘었다. 소통 단절은 한 조직의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구성원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적으로 갈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인간 사회에서 갈등은 어느 시대나 어느 지역에서나 상존하기 마련인데, 문제는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가느냐는 것이다. 만약 구성원들 사이에서 소통 채널이 닫혀 있거나 일방적이라면, 갈등이 그대로 굳어지거나 더 심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일부 문화 비평가들은 각 세대가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소통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문화적 정서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약 100년 이상 집단 생활을 하게 되면 문화가 형성되고, 그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화적 정서라는 것이 생긴다. 그 문화적 정서는 그 사회의 생물학적 유전자같은 역할을 해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문화적 정서는 긴 시간에 걸쳐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반영되고, 그 언어는 다시 각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작용하여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문화적 정서가 공유되는 것이다. 문화적 정서는 사고 방식보다 훨씬 감정적인 요소에 가까워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적 정서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자존감도 잘 유지되고, 스트레스가 적어 편안함을 느낀다.  
  
이 문화적 정서는 누가 강제하지는 않지만 그 사회에서 상당한 구속력을 가지게 되는데, 50%가 넘는 사람이 그 문화적 정서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고 있더라도 여전히 강한 힘을 갖는다. 예를 들어, 한국인의 문화적 정서인 ‘정(情)’은 아직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가 ‘정없는 사람’이라고 알려지면 사람들은 그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또한 ‘염치 없거나, 체면을 차리지 않는다거나, 도리를 다하지 않거나’ 의리가 없는’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물론 이 문화적 정서들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에게 항상 긍정적으로만 작동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하기 이전에 그 사안에 대해 1차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적 판단이라서 강한 힘을 갖는다. ‘결혼’같은 큰 사안부터 열린 공간에서 연인끼리의 신체접촉과 같은 개인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정서는 개인의 행동 방식 전반에 대한 평가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얼핏 개인의 선택을 제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없다면 사람들의 생각이 천차만별로 흩어져 사회는 더 큰 갈등과 혼란 속에 빠져들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 그 어떤 종교도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정서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중세나 근대를 거치면서 한국인의 저변에 종교적인 것보다 더 강한 고유의 문화적 정서가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사회에서 형성된 고유한 문화적 정서는 고정되어 전승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문화적 정서는 기존 정서(정(正))와 새로운 세대의 도전(반(反))이 어우러져 조금씩 변화(합(合))해 간다. 이 과정에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합이 이루어지면 그 정서를 함께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된 것은 우리 사회에서 공유해야 할 문화적 정서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적 정서가 형성되지 못하면 작은 문제라도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서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소통의 채널이 없으니 그러지도 못할 뿐더러 모두 먹고 사는 일에 매몰되어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가장 간단하게 힘에 의한 문제 해결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권력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나 정서와 다른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불평을 토로하는 방법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80년대~90년대 한국 고도성장기에 사회의 주역이었던 세대들은 국가적으로 압축 성장기에 매몰되어 후세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었고, 90년대 이후 성장한 아이들도 부모를 비롯한 누구와도 충분한 토론이나 대화를 나눌 수 없었으며, 사회 어디에서도 이러한 정서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채 오로지 경쟁이라는 틀 속에서 성장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문화적 정서는 대부분 경쟁과 관련된 ‘객관적 공정’과 ‘개인적 이익 추구’에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그 이전 세대들의 문제 해결 방식 중 하나였던 ‘장유유서’와 같은 문화적 정서도 정반합의 과정을 거쳤다면 좀 다른 방식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불행히도 세대간 단절로 인해 MZ세대에게 이것은 더 이상 문화적 정서로 작동하지 못한다. 세대 간 문화적 정서의 단절은 마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을 때, 현지인들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이질적 정서 차이와 유사할 정도로 심각하다. 사실 그리스 로마 시대 이전부터 젊은 세대를 비난하는 글은 적지않게 발견되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세대 간 단절은 그 양상이 훨씬 심각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크게 보면 세 개(60대 중반 이상, 40~60대 초반, 30대 이하)의 거대한 이문화 집단이 점점 서로로부터 고립되어 가고 있는 형국이다. 별다른 노력이 없다면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다 보니 일부 젊은이들이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 부르고, 노년층에서는 젊은 사람들을 향해 ‘버릇없는 사람들’이라고 꾸짖는다. 하지만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다른 세대를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를 보면 경제적으로 오랜 기간 부국이거나 빈국인 경우가 많다. 이것을 보면 세대 간 갈등의 심화는 급속한 산업 규모의 변동이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건강해지고,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세대를 뛰어 넘어 어느 정도 문화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어야 하며, 그래야 세대가 연결되고, 소통도 이루어지며, 갈등 조정도 가능해진다. 이제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된 40대~50대가 지난 세대의 소통 단절을 반면교사 삼아 후세대들과 문화적 정서를 형성해 나갈 고민을 해야 한다. 누가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후세대들과 충분한 소통과 문화적 정서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유대인들이 전세계 어디에서 살건 ‘하브루타(havruta)’를 통해 세대간에 문화적 정서를 전승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식을 참고해 볼 만하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초중등 교육을 이원화하여 중앙정부 중심의 기초 보편 교육과 지자체 중심의 개방 교육으로 구분하고, 지자체의 특성을 교육에 반영해야 하며, 그 속에서 지자체 구성원들과 소통해 나가는 방식으로 문화적 정서를 공유해 나가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지면에서 더 자세히 논해 보려고 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경제적으로 더 이상 급격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상당 부분 일에 매몰되는 시간을 줄이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면 ‘세대 잇기’는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며, 세대 잇기의 기반은 문화적 정서 형성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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